효율적인 실내 재배를 꿈꾸며 시작된 수직 농장
층을 늘려 식물을 재배하는 것이 농경지의 면적은 훨씬 덜 쓰며 이율이 높은 작물 생산 방법이라는 사실을 어떤 농부가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수직 농장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역사가 훨씬 오래되었다. 이 글에서는 수직 농장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떤 문제에 부딪혔었는지 등의 수직 농장에 대한 전반적 역사를 전기 기준으로 심층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수직 농장의 첫 발자국은 1957년부터 시작한다. 덴마크의 크리스텐센Christensen 농장에서 인공광을 이용한 식물 공장이라는 개념이 처음 생겨났으나, 이때의 ‘식물 공장’은 작물의 다층 재배가 아닌, 그저 심어진 작물들이 컨베이어를 통해서 빛과 물, 영양소를 공급받는 말 그대로의 ‘식물 공장’뿐인 매우 단순한 실내 재배 시스템이었다. 그래도 이 아이디어가 산업의 발전에 걸맞는 농경의 자동화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임은 분명하다. 인간이 자연광이나 토양에 기대지 않고 농사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대두된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후 1970년대부터 각각 미국, 일본의 엑스포에서 인공광을 이용한 전면 실내 재배 기술이 기업들에게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이로 인해 1980년대에 1차 붐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때에도 아직 농심의 자동화 수직 농장 같은 시스템이 아니었고, 사람이 모든 다층 트레이를 관리해야 했으며 실내 관리 역시 사람의 몫이었다. 또한 이때 사용된 조명은 경제적 효율이 매우 떨어졌기에 결과적으로 수직 농장의 작물은은 일반 노지 작물보다 많은 비용을 필요로 했다. 하여 해당 시기에 수직 농장을 전면적으로 차용한 기업은 1990년대의 Kewpie Farm을 제외하면 없었다.
그렇게 1999년에 전 세계적으로 시작된 농업 자동화 기술의 개발 시기를 거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수직 농장은 상용화의 꽃을 피울 수는 없었는데, 이는 당시대 자동화 기술의 미흡성과 보수적인 농업 종사자들의 미진한 반응에서 나온 결과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악조건을 뚫고 2010년 오사카 부립대학에서 형광등을 이용한 완전 제어형 식물 공장이 성공적으로 개발되었고, 그때를 기점으로 하여 수직농장이 본격적으로 세계의 농업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저비용, 생산량 증대, 전기 사용 감소를 중점적으로 연구를 진행함에 따라 기업들의 시각에도 비로소 맞아떨어지게 될 만큼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 「수직농장의 국내·외 동향 및 발전 방향」, 『2024-02호, 산업·기술·정책 동향보고서』, 2024. 참고.